특권사라진 시대에 괴로움 겪는(?) 피해자란 점이 공통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지금까지의 전말만 봐도 정말 시사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이 사건이 불거지기까지의 과정도 정말 인터넷강국인 우리나라 다왔다.
사건 초기 모든 기성 언론들은 모 대기업 모 회장이 보복폭행의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이 이슈화된 것은 남대문 경찰서에 피해자들이 진정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서에 출입기자들을 보내고 있는 신문과 방송 등 기성언론들이 일보(첫보도)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누리꾼들이 누구인가? 모 씨 찾는데는 다들 셜록홈즈 능가하는 전문가들 아닌가? 이 보도가 나오자 마자 몇시간도 안돼 인터넷에서는 '한화그룹'과 '김승연 회장'이 이슈로 떠올랐다. 즉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누리꾼들의 '집단 지성'이 모 대기업의 모 회장이 바로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라는 사실을 찾아냈던 것이다.
과거 부천순천향병원 사건에서도 그랬듯이 인터넷의 누리꾼들이 앞서가고 언론이 뒤를 좇는 행태는 반복됐다. 이미 모 대기업 모 회장의 보복폭행사건 주인공이 누구인지 파다했지만 언론은 입을 굳게 다물거나, 인터넷에서 이런 얘기가 있다는 정도의 보도에 머물렀다.
인터넷에서는 재벌기업의 회장이란 사람이 아들이 맞고 들어왔다고 경호원들을 몰고 가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보복폭행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비난여론으로 들끓었다. '서인영 물쇼 동영상'에 몇개의 사이트를 단숨에 다운시켜 버릴 정도로 특정한 이슈에 들끓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특히 이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는 언론들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결국 한겨레신문이 27일자로 이 문제를 대서특필하고 방송 등의 관심이 따르면서 그동안 엉거주춤하고 있었던 경찰 수사에도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28일에는 소환 연기를 요청한 김승연 회장에게 경찰이 출국금지조치를 내리는 강수까지 뒀다.
이런 과정이 말해주는 것은 인터넷이야말로 많은 논란이 있지만 특권이 사라져 버린 우리 사회의 명백한 반영이자 거울이란 점이라고 하겠다. 재벌기업의 재벌총수면 재력과 인맥으로 우리 사회에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인터넷이란 의사소통수단이 없다면 이 사건 역시 일반인들은 아무도 알지 못한채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기성언론들도 만약 인터넷이란 또다른 의사소통수단의 존재가 없었다면 광고압력에 굴복했을 확률이 훨씬 크다. 즉 광고와 기사를 바꿔먹는(?) 과거 무수히 있었던 사례의 반복이 이번에도 재연됐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다 소용없다. 기성언론의 입을 막아본들 무슨 소용인가? 인터넷을 통해 4천만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을.
일일이 예를 들지는 않겠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기성언론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이슈화되고, 누리꾼들의 뒤를 언론이 좇아 결국에는 누리꾼들이 승리하는 사례들이 말이다. 여기에는 재벌의 금력이나 권력층의 권력, 특권층의 특권도 다 소용없다. 옳으냐 그르냐의 판단이란 측면에서 가끔 포퓰리즘에 좌우되는 문제도 있지만 핵심은 특권의 파괴다.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았지만 권위의 파괴에 앞장 섰던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도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승연 얘기에 무슨 노 대통령?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렇지는 않다.
악의에 의해 비롯됐던 선의의 결과든 간에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남의 귀나 시선 별로 의식하지 않고 대통령을 비웃거나 비난, 혹은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광범위하게 현실화됐다는 것이 미치는 파급효과는 크다.
대통령도 술안주로 씹을 수 있는 이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라고 대수이겠는가? 단지 돈 좀 많은 사람일 뿐이다. 이런 의식의 변화가 우리 사회 전체를 바꿔놓고 있는것이다.
한나라당이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는니 뭐니 하면서 난리를 피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나라당이 선거전 그토록 타락한 행태를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반타작 성적을 올리는 것을 보고 정말 선전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참패라고들 하니 참패라고 하자.
한나라당은 말로는 국민을 하늘같이 받드느니 뭐니 하면서 자신들이 바뀌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노 대통령에 대해 욕할 줄만 알았지, 대통령이 술안주로 전락(?)하고 재벌그룹 회장이 폭력혐의로 경찰서로 끌려가야만 하는 이 변화에 대한 본질은 전현 눈치조차 못채고 있다.
만약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재보궐 선거전 그토록 타락한 행태는 보이지 않았어야 했다.
☞ 한나라당 참패라니! 정확히 열린우리당 참패다
ⓒ 서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