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자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없는 집단...서프라이즈 펌...
영국의 언론인 중에는 뛰어난 저술가가 많다. BBC에서 뉴스나이트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사람을 진땀나게 만든다고 해서 정치인들에게 저승사자로 불리는 제러미 팩스먼은 {정치 동물}, {잉글랜드인} 같은 명저를 썼다. 냉정함과 위트가 공존하는 팩스먼의 글을 읽으면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이 방송작가의 손이 아니라 본인의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것임을 실감한다. 팩스먼은 정치 시사 분야에서는 어느 학자보다도 뛰어난 통찰력과 분석력을 가진 일급 지식인이다. 팩스먼만이 아니다. 일요일 아침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중요한 사건들을 대담자들과 함께 심층 토론하는 정치기자 출신의 앤드루 마도 얼마 전에 {현대 영국사}라는 책을 썼다.
방송기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신문기자는 발로 뛰면서 영국 사회의 심층을 해부하는 책을 써낸다. 일례로 가디언지의 여성 컬럼니스트 폴리 토인비는 2003년 {중노동: 영국 저임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책을 썼다. 토인비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년 가까이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병원 잡역부, 초등학교 식당 청소부, 간호조무사, 전화상담원으로 일했고 빵공장과 양로원에서도 허드렛일을 했다. 그러면서 당시 4파운드 10펜스라는 최저임금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생생히 증언했다. 이렇게 발로 뛰는 기자들이 많다.
한국도 옛날에는 좋은 기자들이 많았다. 한국 기자들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과 싸우는 투쟁의 최일선에 나서기도 했지만 일급 지식인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조선일보 외신기자였던 이영희는 반공주의라는 이념적 금기를 깨고 {8억인과의 대화}라는 시사평론집을 썼고 동아일보 런던특파원을 지낸 박권상은 {영국을 생각한다}라는 예리한 영국론을 써냈다. 기자이기 전에 독립된 지성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는 이런 주체성과 지성을 가진 기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두환 정권이 신문 방송을 통폐합하고 기자실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보도 지침에 따라 똑같은 논조로 보도하는 풍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일본에만 아직도 존재하는, 자랑스러운 식민지의 전통이기도 하다. 분석이고 논평이고 할 것도 없었다. 독재권력이 내려보내는 보도자료를 앵무새처럼 받아적는 것이 기자들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기자실은 여관이요 도박장이었다. 어젯밤 얻어마신 술로 쌓인 숙취를 푸는 곳이었고 공무원들이 찔러주는 돈으로 노름을 하는 곳이었다.
다른 신문사와 경쟁을 할 필요가 없으니 자기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정치인과 가깝게 지내면서 돈도 받아 챙기고 적당히 기사를 잘 써주면 나중에 공천을 받아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썩은 집단이 언론인이라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도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언론을 건드리지 못했다. 언론을 건드렸다가는 조중동 같은 수구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한겨레, 오마이뉴스 같은 얼치기 진보 언론까지 한목소리로 정권 타도에 나서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거울이어야 할 언론이 썩으면 그 나라는 미래가 없다. 미군 부대 이전, 방폐장 건설, 연금 개혁 등 하나같이 과거 정권에서 언론의 반발과 그에 따른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여 그대로 방치한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한 참여정부가 이런 시대착오적인 기자실을 외면하고 넘어갈 리 없었다. 기자실도 결국은 국민이 낸 피 같은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참여정부가 기자실을 없애고 선진국처럼 브리핑실제를 제대로 운영하겠다니까 언론 탄압이다, 국민의 알 권리 침해다 하면서 좌우에서 모두 게거품을 문다. 그런데 프리덤하우스의 세계의 자유도 평가에서 한국은 2002년까지 2등급을 받았지만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2003년부터 줄곧 1등급을 받고 있다. 또 언론의 자유를 측정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기준인 국경없는기자회의 평가에 따르면 언론의 자유가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노르웨이처럼 하나같이 기자실이 없는 나라들이다.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국무부, 국방부를 중심으로 일부 기자실을 운영하는 미국은 53위, 그리고 한국처럼 기자클럽이 있는 일본은 51위다. 한국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2003년 49위에서 2006년에는 31위까지 올라갔다. 아시아에서는 부동의 1위인 것이다. 아마 사상의 자유를 짓밟는 국가보안법만 진작 폐기되었더라면 한국의 언론 자유는 5위권 안에 너끈히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결사반대한 집단이 바로 멀쩡한 민주주의 지도자를 빨갱이로 몰면서 광주에서 양민을 학살한 전두환의 똘마니들이 우글거리는 한나라당이고 그것을 조장하고 격려하고 두둔한 집단이 바로 조중동 같은 수구 언론이다. 한국의 언론 자유를 떨어뜨려온 데 혁혁한 공을 세워온 주범들이 언론의 자유가 탄압받는다고 발광한다. 서울대언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 때 조선일보는 전두환을 찬양한 사설이 98퍼센트였던 반면 현 참여 정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하는 사설이 89퍼센트다. 동아일보는 전두환 찬양이 87퍼센트, 노무현 공격은 93퍼센트다.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를 공격한 사설은 전두환 정권 때는 조선, 동아 모두 전무했다. 가장 독재적인 권력 밑에서는 독재에 아부했던 언론이 가장 민주적인 정부를 독재권력이라고 저주하고 있다. 한국은 부패한 언론 독재가 판을 치는 나라다.
한국 기자들이 브리핑제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경쟁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브리핑제의 핵심은 기자들이 질문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웬만하면 다 답변하고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브리핑제에서는 결국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사람이 가장 고급 정보를 빼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리한 질문을 하려면 그만큼 평소 실력이 있어야 하고 실력을 쌓으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맨날 보도자료를 가지고 적당히 교수 발언 몇 마디 끼워다가 기사랍시고 작문을 하다가 자기 실력을 가지고 자기만의 시각으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려니 죽을 맛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들은 이미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다. 기자들이 낮술을 마시고 노름을 하는 동안 국민과 기업은 치열한 세계화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하면 남다르고 질 좋은 물건을 싼값에 만들어 팔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국 기자들도 이제는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경쟁력을 좀 갖추기 바란다. 그것이 기자실 폐지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 발레리
◆ 서영석님 주장에 딴지를 걸며. / ⓒ 우시
상황이 만만치 않은 듯합니다. 오마이는 기자협회장의 주장을 하루 종일 대문 탑에 걸어놓는군요. 네티즌들의 열화와 같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언론쟁이와 정치꾼이 끊임없이 같은 대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주장은 기자실 폐지의 핵심이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관료의 문제라는 겁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죠. 기자실폐쇄의 핵심은 기사란 철저히 텍스트와 맥락에 기초해서 기사를 써야한다는 원칙의 확립입니다. 편견을 기초로 이에 부합하는 부분만을 인용하고 이를 확인할만한 공무원들만 인터뷰해서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제약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국민들의 알권리가 충족되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매듭을 짓지 못하면 상황은 다시 뒤집히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이렇게 일단 물고 늘어지다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건 터지면 집중공격해서 바로 상황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저들의 협조를 구하는 수세적인 자세로 바뀐 듯합니다. 하기야 정부의 본업이 저들과 싸우는 것은 아닌 만큼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고립무원 상태에서 수세적인 입장이 지속되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네티즌들이 지탱해준 거 네티즌 수준에서 끝장을 봐야 합니다. 이제는 정부정책에 대한 검토를 넘어 지난 4년 반 동안 갈겨댔던 기자들의 기사를 낱낱이 드러내서 기자들에게 던져줘야 합니다. 단순히 정부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 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제 상황은 정부평가를 넘어 언론평가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서프가 참평포럼과 구분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론은 정부 파파라치의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정론지가 나오고 정론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누가 먼저 지독하게 정부를 밟는가하는 언론의 경쟁은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정부는 언론의 취재대상자로서 뿐 아니라 언론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이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정부는 언론과 좀 더 잘해보자는 취지를 넘어 현재의 언론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번 조치를 추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을 대선후보가 따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서영석님의 주장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한나라당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저는 그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봅니다. 사실상 한나라당의 그런 선택에 의해 우리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꼭 높아졌다는 근거도 충분치 않습니다.
저는 모든 정치인들 정당 그리고 언론인들이 말하기 전에 우리의 반응에 신경 쓰게 만드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봅니다. 한나라당이든 민노당이든 그 어떤 후보도 네티즌 그 중에서도 서프앙의 목소리에 신경 쓰게 만들 때 우리는 이기는 것입니다. 저들에 의해 우리의 목소리가 무시된다면 여권후보가 승리해도 우리는 지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목소리가 저들에 의해 무시되지 않는다면 여권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