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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 통폐합, 모아지는 논점들에 대하여...서프라이즈 펌...

keany 2007. 6. 7. 06:44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언론의 여러 가지 얘기들을 요 며칠 동안 눈팅만 했습니다.

주로 인터넷에서 본 것이 많고, 가끔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심심해서 주워 본 신문 쪼가리에 나온 사설과 기사, 칼럼...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이 정부 방안에 반대하는 논점은 크게 세 가지로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기자실이 있어야 언론 자유다, 둘째로 공무원들의 브리핑이 부실하다, 셋째로 기자가 공무원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면 정보가 차단되고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된다는 것입니다.

1. 정부 부처 기자실의 존속 문제

언론은 여전히 '기자실'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면서 통합브리핑 룸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이 주장의 정당성을 위하여 궤변을 늘어놓고 있더군요.

예를 들어 언론사마다 기자들이 매달 기자실 운영비를 낸다면서 공짜로 사용하는 게 아니란 걸 강조한 것을 보았습니다. 넓은 공간에서 통신 등 각종 부대 서비스를 제공받으니 언론사마다 매달 최소한 수십만 원은 내나 보구나 생각하기 쉽죠.

실제요? 제가 알기로 과천의 재경부 브리핑 룸은 한 달에 한 언론사 당 2만 원을 운영비로 내고 있습니다.(요즘은 액수가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미미할 겁니다. 어차피 운영비는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명분이 필요해서 내는 것이거든요.) 운영비를 안 내는 국가기관 기자실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압니다.

또 하나, 정책이 잘못된 경우 기자실이 있기 때문에 '부처 공무원들이 기자실로 내려와 자백한다'는 궤변도 있더군요. 참 어처구니없습니다.

핵심은 언론이 항상 감시하고 있으니, 공무원들도 항상 긴장해서 업무 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기자실이 있어서가 아니라, 기자가 있으니 긴장하라는 말로 바꿔야 더 정확하죠.

이외에도 수많은 주장들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언론 자유와 기자실 통폐합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제 생각을 바꾸어야 할 만한 기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기자실을 통합브리핑 룸으로 대체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 언론사들이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진실은 다들 쉬쉬하고 있는 겁니다. 일부 '힘 있는' 언론사의 지정 좌석 자리가 줄어들거나 없어진다는 것, 정부 부처와 폐쇄적인 기자단 사이의 밀월 관계가 줄어든다는 것이죠.

그동안 단독 기자실을 고수해 온 정부 부처는, 기자들의 요구와 해당 부처 공무원들의 이해가 맞아서 유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립 기자실을 가진 정부 부처에서는 기자실이 존재해야 부처의 위상도 높아지고, 기자들과 이너 서클을 만들어서 친하게 지내고 꾸준히 관리할수록 '시끄러운' 기사가 덜 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게 진실에 가까울 겁니다.

따라서 '기자실이 유지돼야 한다, 통합브리핑 룸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탄압이다'라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2. 공무원들의 브리핑이 부실하다?

이 문제는 정부와 언론, 양쪽 다 할 말이 있고, 서로 노력해서 개선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우선 기자들은 이해가 잘 안 되거나, 배경이 궁금하거나, 틀림없이 어떤 문제가 생길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담당 공무원과 직접 얘기하고 싶어 합니다. 그건 기자라면 누구나 갖는 욕심입니다.

반면에 공무원은 그런 기자들을 일일이 상대하다보면 정작 자기 일을 할 시간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특히, 기자들이 기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 갑갑해하죠.

우리나라 언론 풍토에서는 정부 부처의 경우 일반적으로 한 출입처에 1~3년 정도 머문 뒤 다른 출입처로 옮기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 때문에 기자들의 출입처 관련 지식 부족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항상 겪는 일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언론사가 기자를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양성하고, 공무원들이 브리핑을 좀 더 자세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왕도가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거 십여 년 전부터 나온 얘기입니다.

3. 기자들의 자유로운 정부 부처 사무실 출입을 허하라 - 논거에 대하여

기자의 부처 사무실 자유 출입을 허가해 달라, 요즘 핵심 논점이 이거인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기자협회 각 사 지회가 청와대에 전달한 성명서에서는 정부의 방안 가운데 유일하게 이 문제에 대해서만 비판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성명서에는 역시 전가의 보도가 나오네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은 검사실 출입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보도할 수 있었다."

기자협회의 이 진술은 사실도 진실도 아닙니다. 왜곡입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처음 보도된 경위와 경과를 볼까요?
사건을 처음 보도한 것은 당시 석간이었던 중앙일보였습니다.

중앙의 첫 보도는 '경찰 조사 받던 대학생 쇼크사'였습니다. 검사를 검사실에서 만났는데 '경찰이 큰일 났다'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고, 긴급 취재를 통해 보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 보도와 무관하게 그날 저녁 한양대 병원에서 박종철 군의 삼촌과 한양대 병원 의사가 입회한 가운데 부검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폭행당한 흔적이 있다", "온몸에 멍이 들었다"는 두 사람의 언급이 나왔습니다.

이 사실은 다른 신문사 기자도 확인했고, 만약에 확인 못 했더라도 박군의 삼촌이나 한양대병원, 또는 서울대를 통해 언론에 알려졌을 것입니다.

박종철 군이 경찰 조사를 받다가 죽었다는 사실은 중앙일보가 없었다면 은폐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알려지는 데 한나절이 더 걸렸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걸 기자 사회에서는 '시간차 특종'이라고 합니다.

더욱이 박 군이 탁 치니 억하고 죽은 게 아니라 고문으로 죽었다는 진실, 또 경찰이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진실은 검사실이나 경찰서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제 기억이 맞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에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나왔습니다.

첫째는 부검의였던 황적준 박사의 양심선언. 둘째는 고문 경관들의 진술입니다. 고문 경관들이 수감된 교도소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말을 털어놓았고,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재야인사가 이들의 진술을 종합 정리해 외부로 알린 것이죠.

이 사건 보도 경위, 성명서를 쓴 기자가 경력이 얼마 안 되어서 자세히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나아가 기자들의 정부기관에 대한 감시가 그리 중요하다면, 왜 국정원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게 해 달라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국정원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엄연한 국가기관인데 말입니다.

4. 기자의 자유로운 부처 사무실 출입이 초래할 문제 - 핵심은?

기자들이 정부 부처 사무실에 무단으로 드나들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확정되지 않은 정책이 외부로 알려져서 국민의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을 그르친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자본시장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해 상장 폐지 대상 기업을 확대한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시다.

실무자가 대상 기업을 현재의 2년 연속 매출액이 30억 원 미달인 기업에서 50억 원 미달인 기업으로 바꾸는 방안을 기안 중입니다.

우연히 사무실에 들렀던 기자가 실무자의 책상 위에서 이 기안서 초안을 몰래 봅니다. 기자가 보기에 얼마나 섹시(!)합니까?

다음날 아침에 대문짝만하게 뜹니다.

"상장 폐지 대상 확대 검토, 2년 연속 매출액 50억 원 미달 기업으로"

주식 시장, 난리가 나겠죠? 아마 하한가 맞는 기업들 수두룩할 겁니다.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냅니다. "실무선에서 검토 중인 사안에 불과하며 결정된 바 없다."

몇 달 뒤에 확정된 자본 시장 건전화 방안에는 이 내용이 빠집니다. 실제로 실무선의 검토와 과장-국장-장차관으로 이어지는 결재 과정에서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판단해 뺀 것이죠.

이때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입은 주식 투자자, 누가 책임지죠?

이해하기 쉽게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기자의 정부 부처 사무실 무단출입이 가지는 가장 큰 부작용은 위의 사례로 충분히 이해되시리라 믿습니다.

결국 기자의 사무실 무단출입이 가지는 장점, 즉 정부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가 크냐, 아니면 단점, 즉 부정확한 정보의 유통에 따라 정부와 국민이 치러야 할 비용이 크냐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저요? 정부 부처들을 출입했던 기자 경험을 토대로 본다면 단점이 훨씬 더 컸습니다.

정부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는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보도하는 과정에서 가능합니다.

그것이 국민과 정부 양쪽에게 훨씬 필요하고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는 보도 방식입니다.


ⓒ 전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