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불정책의 찬반논쟁보다 더 근원적인 것...서프라이즈 펌...
나는 교사다. 30년 가까이 여중, 남중, 여고, 남고를 거쳐 지금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몸담고 있는 중등교사다. 어제도 나는 복도에 침을 뱉은 놈과 그 주변에 함께 있던 놈들을 불러 세워서 호된 꾸지람을 하였다. ‘복도에 침을 뱉은 놈도 나쁘지만 그걸 보고도 묵인한 너거도 똑같이 나쁜 놈이다.’ 사실이 그렇다. 가래침을 뱉으려는 순간 옆의 친구들이 < 야,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나? > 며 화들짝 놀라는 분위기였다면 그 어떤 누구도 함부로 침을 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뱉었다간 매장당할 판국인데 누가 용감하게 침을 뱉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 연유로 살인, 강간 등은 비공개로 은밀하게 자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살인쯤이야 뭐 어때 하는, 사회적 묵인이 성립된다면 사람 목숨은 침 뱉는 회수만큼이나 공개적으로 죽어나갈 것이다. 최근 정운찬씨가 참여정부의 3불정책에 가래침을 뱉었다. 동시에 서프에서는 정운찬씨가 뱉어놓은 가래침의 불결함을 성토하는 글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정운찬씨가 공개적으로 가래침을 뱉도록 묵인한 < 공동정범 >을 성토하는 글은 보이지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 교육개혁 >은 곧 < 교육제도의 개혁 >인양 착각하고 있다. 교육제도를 바꾸면 교육의 질이 개선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는 마치 경사진 곳으로 물길을 뚫어놓으면 낮은 곳의 물이 높은 곳으로 흐를 것으로 믿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판단이다. 학교는 우리 사회의 성감대와도 같은 곳이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민감하게 적용되는 곳이 학교이다. 왜냐하면 학교의 아이들이 성장하면,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사회로 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담장이나 교문은 아이들 의식을 격리시킬 그 어떤 힘도 없다. 아이들의 촉수는 온통 사회로 뻗어있지 학교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고등학생을 상대로 ‘여러분, 길을 가다가 휴지 조각을 발견하면 반드시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착한 학생이 됩시다.’라는 훈화를 시도하면 이는 곧바로 메가톤급 코미디가 된다. 가장 도덕적인 가르침이 가장 우스꽝스런 코미디로 돌변하는 배경에는 착한 사람이 도태되는 우리 사회가 버티고 있다. ‘니네들, 혼자만 성실하게 양심 지니고 어디 한번 살아봐. 잘 살아지나. 이 사회는 말이야, 그렇게 양심으로 살다간 쪽박차게 돼 있어!’ 그러면 당장 아이들 표정은 진지해진다. 비도덕적인 가르침에 긴장을 하는 배경에는 역시 야비한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 성공하는 우리 사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밤 늦도록 고생하는 목표는 < 잘 살아 보겠다. >는 본능적인 행복추구권의 연장이다. 대학에 진학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숭고한 목적은 순진한 낭만에 지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학교에서는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할 여력이 사라진 지 오래다. 국가의 동량이 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목표는 액자 안에 갇혀 있는 교육목표, 문자상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려는 커리큐럼은 당장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로 학교의 존립자체가 흔들릴 정도다. 그저 내 자식 좋은데 취직시키는 것만이 실질적인 교육목표이고 학교의 생존조건일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 공교육의 실질적인 교육목표는 대기업의 수중에 달려 있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국내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모집 시에 일제히 학력제한을 없애버린다면 대한민국의 교육계에는 어떤 지각변동이 생길 것인지를 상상해보라. 대학에서 본고사 운운하며 학생 선발권을 함부로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모든 기업들이 학력제한을 철폐하고 오로지 창의력과 인간성의 깊이만으로 인재를 채용한다면 입시위주의 학교, 암기 위주의 교육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가 소설을 많이 읽어 인생을 이해하는 폭이 넓은 인재를 우선적으로 선발한다면 전국 고등학교 교실의 풍경이 어떻게 뒤바뀔 것인가를 상상해보라. 특목고가 무슨 소용일 것인가? 공무원을 봉사활동 실적위주로 선발한다면 전국의 양노원이나 고아원은 몰려드는 자원 봉사자들로 몸살을 앓지 않겠는가? 누가 기여를 해서라도 대학에 입학하려고 시도를 할까?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참여정부의 3불정책에 정운찬이 호기롭게 가래침을 뱉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것을 묵인한 < 공동정범 >, 즉 우리사회의 인재등용 시스템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재등용 시스템의 개혁 없이는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 교육개혁은 교육제도의 개혁이 아니고 <사회개혁>과 동의어이다. ⓒ 신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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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공감한다...
그래서 또 깝깝하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