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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수의근...
    농담(濃淡)... 2006. 8. 19. 02:51


    추억의 힘줄은 불수의근(不隨意筋)이니

    왜 아버님 추억은
    마지막 것만 떠오르는지
    보청기 낀 귀에 손바닥 오므려 대시던 얼굴만 떠오르는지.

    새벽 3시 잠 속에서 기어 나와 집을 뜬
    아 아직 인간의 매듭 보이지 않던 곳 백령도
    매듭 하나 새로 지으려고
    부두에서 배에 오를 때부터
    이불솜처럼 끼는 안개,
    가을비 한 차례 뿌려도
    시계 30미터의 안개,
    하늘과 바다가 사라진다.
    이 속에서 예수와 부처가 만나면
    모르는 사이에 서로 구면이 되리라.

    초행길, 사람 무서워 않고 달려드는 갈매기와
    해풍에 키가 줄어든 어눌한 황국(黃菊)뿐.
    꽃 내음에 빠진 듯 일행에 뒤처져
    자꾸 따라오는 늙은 애완견 같은 추억을
    황국 속에 남몰래 얽어 매 놓고
    만취해 생각 필름 끊긴 하룻밤을 보내고
    안개 속에 고깃배들 모여 서로 낮은 소리 주고받는 섬을 떠나
    다시 바다를 건너왔다.

    다음날 아침
    옆에 아버님 추억이 누워 있었다.
    왜 계속 한창 때 모습이 아니고
    마지막 무렵 초췌한 모습인지,
    그렇게 힘들게 말하려다 말하려다 그냥 두시는 모습인지,
    귀 기울여도 숨소리 제대로 들리지 않고.
    한창 때 모습은 황국 속에 묶여
    가을 안개 속 어디에 힘없이 쓰러져 가쁜 숨 쉬고 있는지.
    손바닥 오므려 귀에 댄다.
    바닷물 흐름 잠시 멈추고
    놋 술잔 하나
    눈 껌뻑이며 가라앉는다.
    보이지 않는 게 구멍들이 꾸룩꾸룩댄다.

    추억의 힘줄은 불수의근이니…

     

     

    ...황동규시인의 아버지 황순원님에 대한 추모시....

     

    ...................

     

     

    눈물샘도 불수의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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