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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힘줄은 불수의근(不隨意筋)이니
왜 아버님 추억은
마지막 것만 떠오르는지
보청기 낀 귀에 손바닥 오므려 대시던 얼굴만 떠오르는지.
새벽 3시 잠 속에서 기어 나와 집을 뜬
아 아직 인간의 매듭 보이지 않던 곳 백령도
매듭 하나 새로 지으려고
부두에서 배에 오를 때부터
이불솜처럼 끼는 안개,
가을비 한 차례 뿌려도
시계 30미터의 안개,
하늘과 바다가 사라진다.
이 속에서 예수와 부처가 만나면
모르는 사이에 서로 구면이 되리라.
초행길, 사람 무서워 않고 달려드는 갈매기와
해풍에 키가 줄어든 어눌한 황국(黃菊)뿐.
꽃 내음에 빠진 듯 일행에 뒤처져
자꾸 따라오는 늙은 애완견 같은 추억을
황국 속에 남몰래 얽어 매 놓고
만취해 생각 필름 끊긴 하룻밤을 보내고
안개 속에 고깃배들 모여 서로 낮은 소리 주고받는 섬을 떠나
다시 바다를 건너왔다.
다음날 아침
옆에 아버님 추억이 누워 있었다.
왜 계속 한창 때 모습이 아니고
마지막 무렵 초췌한 모습인지,
그렇게 힘들게 말하려다 말하려다 그냥 두시는 모습인지,
귀 기울여도 숨소리 제대로 들리지 않고.
한창 때 모습은 황국 속에 묶여
가을 안개 속 어디에 힘없이 쓰러져 가쁜 숨 쉬고 있는지.
손바닥 오므려 귀에 댄다.
바닷물 흐름 잠시 멈추고
놋 술잔 하나
눈 껌뻑이며 가라앉는다.
보이지 않는 게 구멍들이 꾸룩꾸룩댄다.
추억의 힘줄은 불수의근이니…...황동규시인의 아버지 황순원님에 대한 추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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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샘도 불수의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