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노무현만한 인물이 나오기 힘들다...서프라이즈 펌...흐름... 2007. 4. 24. 06:01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말로는 정책을 외치면서 정치적 행동은 보스를 바라보고, 지역을 바라보고, 출신학교를 바라보는 등 정책적 명분을 버리고 정치적 실리를 추구하였다. 정치가 정책구도로 가지 못하고 몇몇 영향력있는 인물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반복할 때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정책적 코드를 따라간 천연기념물 같은 인물이 노무현이다.
그래서 노무현이란 인물은 말로는 정책을 외치면서 행동은 자신의 실리를 따라 행동하는 현실에서 정책보다 우선할 수 있었다. 대문에 걸린 글처럼 당시는 정책과 정책의 대결이 될 수 있는 기초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가치와 몰가치의 싸움이었고, 그런 싸움터에서는 가치있는 인물인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이 정책을 지지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었다.
그는 범인이 할 수 없는 정치행위를 했다. 막강한 3김 영향력을 거부했고, 지역구도를 거부했다. 정치적 실리보다는 명분을 추구했고, 정책을 심고 가꾸기 보다는 정책이 자랄 수 있는 바람직한 정치구도를 만들려고 했다. 전근대적인 인물에 따라 운영되는 파벌정치, 지역에 의존하는 지역정치, 정경유착에 의존하는 금권정치를 타파하고 정책이 중심이 되는 정책정치판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노무현이란 인물을 지지하는 것이 정책을 지지하는 것보다 더 우선했다. 계급적이해에 따라 진보정당인 민노당이나 한나라당을 지지하거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보다 노무현이란 인물을 지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가치와 몰가치, 상식과 비상식의 구도였기에 정책을 보고 지지한 것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지지했던 것이다.
대문글에 오른 인물을 내세우는 분은 아직도 정치는 정책구도로 갈라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민주와 비민주, 가치와 몰가치 구도로 가야하고 그렇게 되려면 정책보다는 인물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민주와 반민주, 가치와 몰가치의 구도는 노무현 시대에서 끝났다고 생각한다. 선거용 구호로는 이용될 수 있으나 새로운 정치적 가치를 창출하기는 힘든 구호일 뿐이다.
노무현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처럼 비상식과 몰가치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이를 정면으로 도전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인물이 없다는 것은 그런 인물이 나올만한 환경이 조성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이 아니라는 것은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환경이 바뀐 것은 누가 바꾸었다는 것인데, 바로 노무현이 자신의 정치적 열정으로 그러한 정치환경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파벌정치를 하지 않았기에 파벌에 맞서 싸울만한 정치인이 나오지 않았고, 스스로 정경유착을 끓었기에 금권정치에 맞서 싸울만한 정치인이 나오지 못한 것이며, 스스로 지역감정에 의존하지 않고 끝없이 탈피하려했기 때문에 지역정치에 맞서 싸울만한 정치인이 나오지 않았다.
노무현의 무사심의 정치로 인하여 한나라당이 예전처럼 함부로 부정부패하고 정경유착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함부로 대북정책을 반대하지 못하며 오히려 국민연금이나 노령연금제 같은 경우는 민노당과 비슷한 성향을 보여주고 있기 까지 한다. 모두 노무현이란 인물이 만들어냈다.
한나라당 스스로도 국민을 무시하지 말자는 비판이 끓임없이 나오며 과거처럼 국민을 무시하며 몇몇 영향력있는 기관 즉, 언론이나 그밖의 권력기관을 동원해서 국민을 속여서 집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나는 그래서 아직도 반한나라당정서를 이용해 집권하려는 통합파들이 우습게 생각된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시대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이 노무현이 아니면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시스템의 정비다. 가치와 몰가치, 상식과 비상식이 뒤섞여 뒤죽박죽되었던 정치를 가치의 차이와 다양성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 노무현이다. 이제 그 시스템에 아이템을 담아야 한다. 정책을 담아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어 진화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노무현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은 것은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정책의 시대에는 인물이 부각되지 못하고 정책이 부각되는 것이다. 집이 허물어져 있을 때는 그 집을 수리하는 목수가 부각된다. 그러나 목수가 집을 다 짓고 난 후에는 그 집에 무엇을 채울까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일전에 서프의 스탠스는 유용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렇다. 노무현이란 인물은 몰가치의 시대, 비상식의 시대, 부조리한 시대에는 정책보다 우선한다. 왜냐하면 정책이 왜곡되지 않고 투영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책 운운하는 민노당이나 합리적 노빠 운운하는 노빠들보다 노무현의 진정성을 지지하는 서프의 스탠스가 더 시대정신에 적합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포스트 노무현 시대를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는 노무현만한 인물이 나오기 힘들다. 인물이 정책을 압도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어떤 대문글에는 유시민의 정책 집행능력을 비유해 정책보다는 인물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며 택스트보다는 콘택스트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분이 있는데 그건 노무현 시대에서 끝난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시민같은 사람이 많지만 그가 전두환이나 국민들의 인기를 의식하는 김대중, 김영삼 집권 시기였으면 그는 짤리거나 그 소신을 접어야 한다. 노무현이라는 환경 하에 유시민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해찬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권 때 이해찬의 고집 때문에 공천탈락될 상황을 노무현이 막아준 일이 있다. 그는 김대중의 환경에는 맞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유시민이나 이해찬은 노무현의 그림자이다. 노무현이란 환경이 없으면 유시민이나 이해찬의 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따라서 노무현이 만들어 놓은 정치나 행정시스템에서는 수많은 유시민, 이해찬이 나올 수 있다. 정책이 인물을 만드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시스템을 만들 때는 인물이 필요하지만 시스템이 구축되면 시스템을 내용을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노무현은 정책이 정치를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역사가 노무현에게 비정상적인 시스템을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만들 것을 명령했고 노무현은 이를 해냈다. 그렇다면 포스트 노무현 시대에는 시스템을 채울 수 있는 정책이 주도하는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빠가 노무현의 정책 즉, 신진보인지 유연한 진보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노무현의 정책에 착렴할 때이다. 그리고 그런 노무현의 정책을 가장 잘 이어나갈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그런 연장선상에서의 유시민, 이해찬이어야 한다. 정책을 거부하고 노무현같은 진정성이 있느니, 정책의 추진력이 있느니, 콘택스트 운운하고 몰가치 운운하면서 유시민 이해찬을 지지하는 것은 시대에 뒤처진 의식이라 생각한다. 감동의 정치는 노무현만이 할 수 있는 특허다.
나는 노무현의 신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에 그에 가장 합당한 인물을 지지하려 한다. 그게 유시민이든 이해찬이든...
ⓒ 여우사냥
**********************
쾌동감~ 동감!!!! ^^
'흐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세판단과 대선...서프라이즈 펌... (0) 2007.04.25 한국 언론의 ‘자해성 보도’ 국제적 망신 초래...청와대브리핑 펌. (0) 2007.04.24 한겨레에 보내는 ‘쓴소리’ <2> 개헌 보도...청와대브리핑펌. (0) 2007.04.23 송광수씨 강연하다 입 비뚤어졌습니까?...서프라이즈 펌... (0) 2007.04.23 어눌한 이태식과 야쌉한 손석희의 대화...서프라이즈 펌... (0) 2007.04.21